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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 시대에서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방법
    생각 드러내기 2021. 4. 7. 16:46

      훗날 사회문제를 추적하는 직업을 갖는다면, 다음 방법을 활용하여 사태의 핵심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해당 방법은 사소한 협업에서 착상되었다.

    친구를 따라 코딩을 배우던 중이었다. 교과서를 더듬어 프로그래밍이라고 부를 법한 것을 흉내낼 정도가 되자, 친구가 한 가지 계획을 가져왔다. 시청의 업무 추진비 사용 내역을 분석해 주변 맛집을 알아내자는 것이었다. 흥미롭다고 생각하여 바로 수락했다. 다소 헤맨 끝에 정보를 모아 친구에게 보냈고, 친구와 다른 동료가 정보를 가공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결과물은 맛집의 위치 정보까지 연동하여 지도로 볼 수도 있었다. 프로그래밍을 이용해 볼만한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사람들에게 선보이진 않았다. 맛집을 알아낸다는 본래의 목적보단 부작용에 더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내부의 판단 때문이었다. 공무 처리 비용이다 보니, 사용처와 액수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자극할 우려를 가졌던 것이다. 이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부작용을 본래 목적으로 갖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각 자치단체의 홈페이지에서 민원 데이터를 분석하여 시민들의 불편이 집중된 곳을 지적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는 누구나 쉽게 떠올려볼 수 있는 생각이다. 보다 주목할 것은 그러한 불편이 왜 일어났을까 하는 물음에 있다. 겉으로 드러난 불편 너머에 구조적인 결함을 드러내야 한다. 문제의 해결은 원인을 제거했을 때 비로소 이뤄진다.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한 사태의 원인에 접근해야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기에 앞서 전제를 설정해야 한다. 사실, 시민들의 민원을 종합하는 것으로부터 구조적인 결함을 드러낸다는 생각은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선 가설이 필요하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설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라는 것은 양극화, 빈곤, 차별 등과 같이 추상적인 영역(그러나 실재하는)을 비롯해 교통체증 및 사고, 소음, 화재 등 물리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다. 본문에서는 비교적 입증이 쉽고 직관적으로 인식되는 물리적 문제에 한해 집중하고자 한다. 한편, 설계는 인위적인 행위로서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의도가 담긴 정교한 기획을 의미한다. 사회는 사람들이 조화롭게 모여 살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결과다. 사회는 애초부터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공동체이며 크고 작은 행정은 갈등을 줄이고 질서를 세우기 위한 사회적 결과물이다. 따라서 사회 속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설계의 문제다. 사회의 일부를 기획한 사람의 의도가 바람직하지 못했거나 기획을 하는 과정에서 경우의 수를 미처 다 살피지 못한 것이다.(이러한 문제들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개인의 탐욕이고 다른 하나는 권태다. 각각의 원인은 사후적으로 드러났을 때, 책임을 추궁하여 비리와 직무유기가 된다. 물론, 후자는 경우의 수를 다 살핀 경우에도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여 억울한 사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한정적이다. 대부분의 사회 내 경우의 수는 오랜 시간의 경험이 축적되어있기 때문에 예상 가능하다. 또한, 기획 당시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시간이 흘러 주변 환경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해당 설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는 직접적인 기획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기획된 설계가 주변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것으로 간접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 문제는 아래 교차로 예시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결국, 사회문제는 제도 설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방법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다.

    이제 문제의 원인에 접근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방법은 프로그래밍의 도움을 받는 영역과 합리적인 추론을 하는 영역으로 나뉜다.
    전자는 사실 간단하다. 한 지방자치단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민원 페이지의 데이터를 전부 수집한다. 그리고 민원을 키워드로 분류하여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민원이 집중되는 곳을 지도에 표시하여 어떤 장소 혹은 시설이 문제가 되는지 파악한다. 단순히 얘기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몇 년치 민원 데이터를 수집하는 용량과 시간, 각 데이터를 일정한 형식으로 환원하는 데이터 전처리, 줄 글로 되어있는 민원을 선명하게 범주화하기 위한 키워드 고민, 이를 시각화하기 위한 작업 등, 고민해야 할 문제가 많다. 이와 같은 기술적 영역은 많은 경험을 통해 숙달은 필요하지만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점은 방대한 정보를 보다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컴퓨터의 속도가 빨라지고 용량이 커지면서 정보는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이를 물리적으로 일일이 확인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프로그래밍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처리하는 정보가 방대하여 이를 수렴하면 진리 값에 가까워진다. 프로그래밍을 통해 개개인이 느끼는 불편을 실재하는 문제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지방자치단체는 민원을 처리하고 자체 통계를 가지면서 문제를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의 회전 교차로에서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면 자치단체는 교차로 진입 전에 정지선을 선명한 색으로 칠하는 방법을 강구하여 문제를 해결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왜 회전 교차로에서 사고가 잦은지 묻는 것이다. 회전 교차로는 차량의 속도가 줄어들어 사고발생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이런 곳에서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면, 해당 지역이 과연 회전 교차로 설치에 적합한 곳이었는지 의심해봐야 한다. 회전 교차로는 차량 통행이 적은 지역에 설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교통량이 많으면 오히려 교통 혼잡을 가중 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당 지역의 교통량을 조사하고, 회전 교차로 설치가 합당했는지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적절하지 않았다면, 해당 교차로 공사와 관련한 기획, 회의 기록, 건설사, 계획 담당자, 당해 책임자 등을 따져 어떤 의도로 설계된 것인지 추적해야 한다.(물론, 설계 당시 해당 지역의 교통량이 적어 교차로 설치에 적합했고, 이후 모종의 이유로 인구가 밀집되어 교통량이 많아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문제의 원인은 인간의 기획을 벗어난 영역에 있으므로 직접적인 기획의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해당 문제는 교차로가 기획의 산물이며 교차로를 중심으로 여러 변화와 맞물려 생긴 문제이므로 간접적인 기획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해당 교차로에 교통량이 많아질 것이라는 징후가 있었는지, 징후가 있었다면 지자체는 이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사고가 늘어난 시점으로부터 문제를 얼마나 방치하고 있었는지 등을 추적하여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당연히 지방자치단체는 이러한 일을 수행할 수 없다. 해당 설계와 이해가 얽힌 사람들이 속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보를 취합한 결과로 구조적인 원인을 드러내는 작업이 바로 합리적 추론의 영역이다.

    결과적으로, 방법에 필요한 두 가지 요소는 기술과 통찰력이다. 기술은 컴퓨터의 힘을 빌려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고 통찰력은 처리한 정보로부터 현상 너머 사태의 본질에 다가가는 능력이다. 각 능력이 발휘되는 지점은 프로그래밍과 합리적 추론이다. 이 두 가지 기술을 종합해 정보시대에서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방법을 작성해보았다.
    그러나 아직 두 가지 의문이 남는다. 첫째, 언급한 방법이 꼭 프로그래밍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언론에서 제보된 정보를 바탕으로 이를 역추적하여 설계 책임자의 비리와 근태를 밝히는 일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그렇다면, 정보시대는 어떤 시대고, 프로그래밍이 줄 수 있는 차별화된 장점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답은 사회문제에 대한 능동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둘째, 사회가 설계의 결과라고 하더라도, 그것으로부터 원인을 역추적해나가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결과로부터 원인을 도출하는 것이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사회처럼 설계가 뒤얽히고 보이지 않는 과정들이 많은 영역엔 인과를 밝히는 일이 쉽지 않다. 이에 대한 타당성을 언급해야 글의 설득력이 높아질 것이다.
    두 가지 의문을 해명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각각 따로 정리하여 올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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